“야, 이 삼성의 개들아!”
1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민원실이 소란스러웠다. 악에 받힌 황상기(56)씨의 고함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는 3년 전 죽은 딸 황유미(당시 22살)씨의 영정 사진을 든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일행들도 저마다 가족의 영정 사진을 들었다. 이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소속 회원들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면담을 요구하던 참이었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황씨가 명백한 산업재해를 당했다며 3년간 진상 규명 활동을 벌여왔다. 반올림은 또 황씨와 같이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었다는 제보가 100건이 넘었으며 이 가운데 3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찾은 이유는 나흘 전 열렸던 노동부 국정감사 때문이다. 이날 국감에서는 반올림이 근로복지공단에 제기한 행정소송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와 공동대응하고 있다는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반올림은 황씨 등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에 대해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문건은 근로복지공단이 산하 경인지역본부에 보낸 내부 공문이다. 공문에는 “삼성전자(주)가 보조 참가인으로 동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며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됨을 감안하여 본부 관련 실국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황상기씨는 “이 많은 노동자가 죽고 병들어 가는데,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회사 편만 들면 노동자는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하느냐”며 “삼성복지공단인지, 근로복지공단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시녀(54)씨도 “자식이 병들어 비틀리고 죽는 것을 보는 심정을 아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딸 한혜경(32)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한 뒤 시력·보행·언어 장애 등으로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우리가 가지 뭐. 몇 층이 이사장실이에요?”
한 시간을 기다려도 근로복지공단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번엔 정애정(34)씨가 나섰다. 그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민웅(당시 31살)씨의 아내로, 그 자신도 삼성전자 기흥공장 5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다.
정씨가 엘리베이터에 접근하자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황상기씨 등 다른 반올림 회원들이 가세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이 소동은 30분 후 ‘비키라’는 반올림 회원들과 ‘못간다’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 양쪽 모두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고 나서야 끝났다.
“어차피 내 남편은 죽었어, 나 혼자 살아 뭐해! 이 나쁜 놈들, 어떻게 이런 일이…”
실랑이 끝에 기력이 다한 정씨가 끝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그의 손에는 ‘삼성과 정부는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지난 15일 국감에서 근로복지공단 신영철 이사장은 “공단이 단독으로 소송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업장과 공동 대응하고 있다”며 “이는 소송 과정에서 통상적인 일”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영상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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