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이만기의 인생은 씨름이다] ① 악동 호동이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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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 때 깐죽' 애증 교차 후배

씨름대결이 끝나자 강호동이 이만기 교수의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KBS2 '1박2일' 화면 캡처

'국민MC' 강호동이 지난해 11월 1박2일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김해에 왔을 때 내게 물었다.

"행님, 옛날 시합 때 향수 바르고 나왔지예?"

최근 탈세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나 강호동은 내 씨름 인생의 끝점과 시작점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1박2일 촬영 전에 자기가 진행하는 '무릎팍도사'에도 청했다. 녹화 마치고 옛날 얘기하며 술도 한잔 했다. 그 전까지는 마산상고 7년 선후배로 가끔 통화하는 정도였다. 호동이 말로는 내가 경기 전에 향수를 뿌린 거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아니다. 시합 날은 양치질 말고는 물도 안 찍어 발랐는데 말이다.

마산상고 7년 후배 직접 지도도
'1박2일' 대결 2승1패 호동 져
씨름에 대한 자기 역할 할 시기


호동이는 내가 경남대 다닐 때 고등학교 후배여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합하면서 깐죽대니까 얄밉기도 했다. 애증이 교차하지만, 지나고 보니 더욱 정이 가는 후배다.

요즘 마음 고생이 심한 것 같아 최근 전화통화를 했다.

"호동 씨 마음 고생 심하제?"

"아닙니다. 행님 괜찮습니다."

"니가 깨끗하게 승복 잘 했다. 구태의연하게 변명했으면 니가 더 죽었을 기다."

"행님도 그래 생각하지예?"

"잘했다. 니가 영 죽지는 않을끼다. 국민들이 더 좋은 모습 기대 안하겠나."

사실 씨름인들은 결정이 옳다고 판단하면 확실히 승복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호동이가 그렇게 처신하리라 믿는다.

1박2일 촬영도 즉흥적이었다. 처음엔 그저 전화퀴즈 정도로 생각했다. "교수님 이승기 하고 초등 선수가 씨름 붙으면 누가 이기겠습니까"하고 물을 때만 해도 직접 올 줄 몰랐다. "교수님 하고 저 하고 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라고 묻기에 "해 봐야 알지" 했는데 덜컥 학교로 찾아 온다는 것이다.

방송 1편이 끝나고 전화기에 불이 났다. 이경규 선배도 "호동이 한테 직접 물었는데도 안 가르쳐 준다. 누가 이겼노?"하고 궁금해 했다. 심지어 형제들도 전화를 하고 손주들도 물어왔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사실 호동이는 전형적인 씨름꾼이다. 목이 짧고 가슴이 두껍다. 19년 됐는데 아직 서로의 씨름 깊이를 모른다. 2승 1패였다. 첫 판 이기고 둘째 판은 방심을 했더니 바로 치고 들어왔다. 일부러 질 생각은 애초 없었다. 아무래도 늘 운동을 하는 나와 호동이는 다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배를 그렇게 이기려고 했던 옛날 생각이 났는지 판이 끝난 뒤 호동이가 울었다.

샅바 잡기 전에도 호동이가 "교수님 리얼이니까 땡겨야 합니다. 짜고 치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수근이는 힘이 좋았다. 승기는 말 그대로 허당이고. 말이 초등학생이지 그날 초등 선수들이 먹은 고기가 300만 원어치였다. 아이 한 놈이 공깃밥 아홉 그릇을 비웠다. 약속대로 호동이가 다 냈다.

우린 둘 다 씨름으로 이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인기가 떨어진 지금의 씨름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잠시라도 1박2일 프로그램을 통해 씨름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너무 고맙다. 아마 호동이도 앞으로 씨름에 대한 자기 역할을 해야 할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올해 추석 씨름은 대호황이었다.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하는데 평소 노래 끝나면 관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번엔 달랐다. 학생들도 오고 여성들도 많이 보러 왔다.

천하장사 타이틀을 처음 따던 28년 전 서울 장충체육관은 관중이 미어터졌다. 결승에서 맞붙은 최욱진 선배는 말그대로 무시무시한 '황소괴물'이었다.(2편에 계속) 정리=심층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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