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컴] <43> 한 언론학자의 저항

  • 오피니언
  • 임연희의 커뮤니케이션

[임연희의 컴] <43> 한 언론학자의 저항

  • 승인 2011-12-01 08:57
  • 임연희 기자임연희 기자
[임연희의 커뮤니케이션] <43> 한 언론학자의 저항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주최 토론회가 발제자 불참으로 중단되는 망신을 당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스마트 미디어시대의 지역방송 역할과 방송심의’였는데 2세션의 발제를 맡기로 했던 충남대 이승선 교수가 참석하지 않아 10분 만에 토론이 중단됐다. 사회를 맡은 김영기 전남대 교수도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한 주최 측을 비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방통심의위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 이 교수는 거듭된 논문삭제 요구를 거절하고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불참했다. 대신 사회자와 토론자에게는 발표 전날 메일을 보내 발표를 못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발제자의 주제발표 없이는 정상적인 토론회가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펑크’낸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언론법 분야 최우수 연구자에게 시상하는 철우언론법상을 수상한 우리나라 대표 언론법학자다.
 
이 교수는 이날 ‘지역방송 심의의 특성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방통심의위의 최근 심의를 지적하는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에 항의표시로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이 교수에 이어 자리를 뜬 김 교수도 “다른 학회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처사로 논문삭제를 지시한 방통심의위는 언론학회에 사과하라”고 비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올바른 이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기구다. 방송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심의하는 위원회가 정치적 이유로 학자의 논문까지 심의하려들다니 어처구니없다. 방통심의위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트위터 계정자체를 차단해 이미 검열기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검찰이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구속하고 법원이 100일이 지난 후 석방한 이후 인터넷 공간에서 날카로운 필력을 자랑하던 네티즌들이 사라진 것에서 우리는 이미 표현자유 억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봤다. 이승선 교수의 '토론회 펑크'는 학문의 자유와 표현 자유를 수호하려는 학자의 몸짓이다. 학자가 말과 글이 아니라 몸부림으로 저항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표현의 자유란 그런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은 반드시 먹어야하고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침 한번 꼴깍 삼키며 참아버리기 쉽다. 이런 이유로 우리 헌법 가운데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영역에서만 위축효과(chilling effect)만 발생시키는 법도 위헌판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을 집단 모욕했다고 개그맨을 고소하고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여당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변칙처리를 비판했다고 사퇴하라고 아우성인 세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표현자유 보호가 선진국 가운데 최악임을 실감할 수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쥐 그림 대학강사 기소, 박원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표현자유 위축사례는 무궁무진하니 말이다.
 
이런 표현자유 침해가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대전시에서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시 산하 기관장 인사에 대해 염홍철 대전시장을 비판한 언론사 기자에게 시장의 한 측근이 "대전에서 살면서 현직시장과 불편하게 지내서 좋을 게 뭐 있느냐? 기자가 손해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점잖게 충고’했다는 소문이다.
 
또 대전시는 염 시장을 비판하는 '대전판 나꼼수'를 제작하려는 인터넷신문에 대해 영상을 게재하면 시청 내부 모든 컴퓨터에 해당 사이트를 차단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단다.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어 억압 수준이다. 비판적 언론과 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는 속셈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만간 염 시장을 공식 방문해 대전시와 염 시장의 언론통제와 표현자유 침해문제를 따질 계획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지역 학자가 표현자유를 억압하는 방송통신심의위에 보낸 '표현자유를 위한 저항의 메시지'가 기폭제가 되어 언론과 기자, 주민들이 말하고 싶은 자유를 침해받지 않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행정수도' 핵심 기능 지연… 윤 정부, 반전 카드 있나
  2. 대전에서도 퀴어축제 열리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출범
  3. 호수돈 개교 125주년 동문합창단(호종) 창단 어울림마당과 총동문회 정기총회
  4. ‘머리를 보호한 채 빠르게’…실전 같은 대피훈련
  5. [날씨] 15일 낮부터 돌풍·천둥·번개 동반한 비
  1. 세종시 나성동 '소제향' 최세령 대표, 이웃사랑 실천
  2. 한수정, 국가 ESG 우수기업 2년 연속 수상
  3. [문예공론]'책쾌'와 '책가도(冊架圖)'를 알고 계십니까?
  4. [인터뷰]지광 녹야원 추모관 주지 스님
  5. 2027 충청 세계U대회 홍보 열기...전남 담양으로 확산

헤드라인 뉴스


대덕특구 미래 담을 고밀도 개발 탄력 받는다

대덕특구 미래 담을 고밀도 개발 탄력 받는다

대전시의 대덕특구 고밀도 개발이 탄력을 받게 됐다. 14일 연구개발특구 내 토지 건폐율·용적률 상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연구개발특구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됨에 따라 글로벌 혁신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1970년대 전원형 연구단지로 조성된 대덕특구 Ⅰ지구(대덕연구단지)는 27.8㎢(840만 평) 규모지만, 이중 약 84%(710만 평 녹지지역)는 토지활용도가 낮은(저밀도 개발로 제한) 지역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연구원 분원 설립 한계, 혁신 창출을 위한 교류·융..

대전시, 일류경제 실현 "집토끼 잡아라`"
대전시, 일류경제 실현 "집토끼 잡아라'"

'일류경제도시' 실현을 위해 대전시가 혁신 기술을 갖춘 벤처스타트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기업 유치 등 외부 수혈도 중요하지만,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R&D 기술을 활용한 지역 기업의 성장 지원을 통한 우수 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15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나노반도체·바이오헬스·우주항공·국방 등 4대 핵심전략산업 딥테크 기업의 육성과 지역 벤처투자의 선순환 체계 구축을 위한 벤처스타트업 투자 위한 '대전투자금융(주)'을 7월까지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13일 지역 벤처투자 생태계 구축 및 혁신성장 지..

다소비 가공식품 34중 20개 품목 가격 인상… 고물가 시대 주부들 부담 가중
다소비 가공식품 34중 20개 품목 가격 인상… 고물가 시대 주부들 부담 가중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다소비 가공식품 34개 품목 중 20개 품목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품목은 한 달 만에 두 자릿수 이상 상승하며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고물가 시대에 품목을 가리지 않고 물가가 전방위로 뛰는 모양새다. 15일 한국소비자원의 다소비 가공식품 가격 동향에 따르면 4월 기준 34개 품목 중 컵밥과 간장, 참치캔, 어묵 등 20개의 판매가격이 3월보다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가 가장 많이 구매하는 다소비 가공식품의 가격이다. 인상된 품목 중 가장 가파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 호국영령 기리며 태극기 꽂기 봉사 호국영령 기리며 태극기 꽂기 봉사

  • ‘머리를 보호한 채 빠르게’…실전 같은 대피훈련 ‘머리를 보호한 채 빠르게’…실전 같은 대피훈련

  • ‘운동으로 치매를 예방합시다’ ‘운동으로 치매를 예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