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만화 추천 [CECI 10년8월호]

!@#… (c모 특유의 칙칙발랄함을 생각할 때) 이례적으로, 여성지 CeCi에서 의뢰받았던 글. 여름특집으로 각종 공포물을 모아 소개하는 글에서, 공포만화 파트.

step1. 심장벌렁 초심자
초심자라면 엄청난 충격보다 은근한 스릴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다소의 공포요소가 있더라도 호러보다는 스릴러, 이왕이면 엽기보다는 인간적 이야기 정도가 뛰어들기 적합하다.

블랙홀 / 찰스 번즈 / 비즈앤비즈

1. 누구에게: 그럴듯한 문학적 향취와 공포분위기를 함께 느끼고픈 이
2. 왜: 성장과정의 불안과 막연한 공포를, 신체를 뒤트는 기이한 전염병이라는 소재로 다룬 미국만화. 성적으로 서로 접촉한 젊은이들이 뿔이 나고, 몸 전체가 탈피하고, 또다른 입이 생기고, 사회로부터 도피해 숲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꾸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반목과 죽음이 이어지고…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도, 강렬한 대비와 상징의 흑백그림들을 보고만 있어도 속이 이상해진다.
3. 십자평: 읽고 폼 잡기 좋은 만화. ‘성장’, ‘전염’ 그런 키워드만 기억하라.

두사람이다 / 강경옥 / 시공사

1. 누구에게: 누군가 나를 해칠까봐 두려워해본 이
2. 왜: 특정한 두 사람이 만나면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인연이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하는데 그것이 내 친구인지, 가족인지 누군지 모른다. 어쩌면 편집증적 망상일수도 있다. 마음을 닫거나 미숙하여 스스로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 내적 갈등의 심리묘사에 탁월한 강경옥의 장기가 듬뿍 발휘된 공포물.
3. 십자평: 읽고 나서 주변인들에게 괜히 의심의 눈초리를 주지 마시길.

step2. 심장쫄깃 중수.
좀 더 익숙해지면 대놓고 섬뜩한 것으로 뛰어들 차례다. 상상을 초월한 형태의 기이한 연쇄 죽음, 우리에게 친숙하고 평온한 생활환경 속의 엽기 살인 같은 것들이 충격을 준다.

소용돌이 이토준지 / 시공사
1. 누구에게: 잔인하고 기괴한 죽음에 놀라고픈 이
2. 왜: 다양한 이들이 트럭에 깔려 죽든 벽 틈새에 끼어 죽든 기이하게 사고를 당해서 죽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소용돌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점점 더 심해져서, 결국 수많은 이들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하나로 합쳐져 죽는다. 잔인하고 기괴한 상상력의 끝자락을 달리고, 공포물에 흔히 등장하는 교훈적 메시지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즉 매력이 넘친다는 말이다.
3. 십자평: 나중에는 모기향만 봐도 절로 뼈가 꺾인 시체들이 생각나리라.

이웃사람 / 강풀 / 문학세계사
1. 누구에게: 생활형 공포를 느끼고 싶은 이
2. 왜: 평범한 내 이웃이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평범한 내 이웃들이 각자 조금씩 힘을 합칠 때 큰 변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직접적으로 잔인한 장면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출로 최고의 긴장을 주고, 현실상황과 접목함으로 최고의 공포가 된다. 오늘날 한국 현실에서 느낄만한 불안과 공포감이야말로 최고의 공포스릴러물 소재다.
3. 십자평: 그러니까 평소에 이웃들과 친하게 지냅시다.

step3 심장버럭 마니아.
솔직히 공포물로 그저 놀라서 충격을 받고자 한다면, 그 자체로 중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고수라면 공포 코드들이 극단을 넘어 아예 또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지경까지 즐긴다. 공포가 도를 넘어서 유머가 된다거나, 피칠갑이 미술작품이 된다거나 말이다.

시오리와 시미코 연작 (살아있는 목, 파란 말 외) / 모로호시 다이지로 / 시공사
1. 누구에게: 부조리한 공포에 껄껄 웃고 싶은 고수
2. 왜: 시오리와 시미코라는 일견 평범해보이는 두 여고생이 사는 평범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전혀 평범하지 않는 주민들과 신기한 요괴들의 왁자지껄 기담. 잔인한 공포물 세계관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데도 너무 그것들이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져서 오히려 박장대소 유머가 되어버린다(예: “토막살해당한 목을 주워와서 수조에 넣었더니 잘 크더라”).
3. 십자평: 읽고 나면 다른 공포물에서도 유쾌한 구석을 찾아나서게 된다.

히노 히데시 단편집 (붉은 뱀, 지옥도 외) / 히노 히데시 / 시공사
1. 누구에게: 지옥의 풍경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고수
2. 왜: 불안과 신경증, 공격성이 흐느적거리는 선과 망연하게 쳐다보는 커다란 눈망울들, 황폐한 풍경의 묘사 속에 펼쳐진다. 무서운 꿈을 꾼 듯한 기승전결 애매한 괴로운 풍경의 목격담으로 가득한 이야기. 섬뜩한 스릴이나 현실적 교훈 또는 화끈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 없이, 끈적한 불편함만이 이어진다. 오락으로서의 공포물이 아니라, 지옥의 풍경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작품.
3. 십자평: 주요 장면을 컴퓨터 월페이퍼로 사용하면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공포만화의 엑기스 CODE]
– 주인공 주변에서 서성거릴수록 화려하게 죽는다.
– 영능력, 초능력등을 지닌 이들치고 그 능력으로 주변인을 구해줄 수 있는 이는 없다
– 줄거리에 도망치는 내용이 있다면, 반드시 최소한 한번쯤은 잡힌다
– 다시 잘 생각해보면,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이 가장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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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공포만화 추천 [CECI 10년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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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대통령 일대기 학습만화 만들면 최악의 공포만화 될 터인데! RT @capcold: [캡콜닷넷업뎃] 공포만화 추천 (CeCi 게재) http://capcold.net/blog/6209 | 이제 나름 여름도 끝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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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트윗 정말 깨알같군요. 완소! RT @capcold: [캡콜닷넷업뎃] 공포만화 추천 (CeCi 게재) http://capcold.net/blog/6209 | 이제 나름 여름도 끝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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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만화 하수부터 고수까지 추천 http://capcold.net/blog/6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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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만화 추천 http://j.mp/bSjL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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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가기 전, 공포만화 관련 옛글들: 99년OZ http://t.co/otel6mb 02년Na http://t.co/ShC1neJ 10년CeCi http://t.co/PjOPjdk. 메이저 지면에 쓸수록 가볍게 가겠다 용쓰는 모습이 역력.

Comments


  1. 이례적인 의뢰임에도 글은 평소대로(?)로군요. 크하하.
    전 개인적으로 공포물 넘흐 싫어합니다. ㅠㅠ
    그런데 강경옥과 강풀의 작품은 봤군요. (이건 뭘까요?)
    아무래도 이토 준지는 못 볼 듯. ㅋ

  2. 시공사, 시공사, 시공사…시공사 시절 무서운 짓거리 많이 해놨네…ㅋㅋ

  3. 아 맞다..위에 googi 님이 정말 악행을 저지르신 분이죠. 히노히데시의 지옥도를 생각하면 아직도 덜덜덜.

  4. !@#… 뗏목지기™님/ 평소보다 1밀리미터정도 더 발랄합니다(그런가?)

    googi님/ 확실히 그땐 뭔가 이미지가, 공포전문 시공사였죠. 지금은 슈퍼히어로 공장 쯤?

    nomodem님/ 양장본을 내시기 전에 나오신게 안타까울따름;

    erte님/ 고양이 욘&무도 어떤 정점을 찍는 작품입니다(…)

  5.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요새 정말 이곳저곳에서 추천 받고 있군요. 살아 있는 목을 직접 읽어 본 터라 그 센스에 대해선 저도 잘 알지만.. 최근에 ‘울기엔 좀 애매한(과 기타 여러 책)’을 산 지 얼마 안 되서 다른 책 살 돈 여력이 안 되는 이 상태에서 이렇게 추천을 받으면… ㅠㅠㅠ

  6. !@#… 언럭키즈님/ 뽐뿌를 간직하고, 여력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지르면 되는겁니다(핫핫)